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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펑크패션의 아이콘 아티스트로서의 삶 패션 브랜드 스토리 사회운동가

by mono_f 2023.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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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영국 패션의 상징, 아이콘 그 자체 이 시대 패션 디자이너들의 롤모델인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작년 12월 새해를 며칠 앞두고 81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오늘은 영원한 아티스트로 행동하는 사회 운동가로서 그녀의 삶과 정신 그리고 패션에 대해 포스팅하려고 합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영국 패션의 상징이된  펑크의 아이콘

저항과 혁신의 상징으로 영원한 10대의 열정을 가진 아티스트 비비안 웨스트우드 그녀가 죽기엔 너무 젊은 나이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여전히 가슴 뛰는 열정을 가지고 행동하고 끊임없이 창조하던 그녀에게 81세의 나이는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

그녀가 패션과 함께 삶을 시작했을 나이는 7살 크리스찬 디올의 뉴룩을 감명 깊게 보면서부터라고 한다. 영국에서의 그녀의 입지는 대단하다. 내가 패션을 처음시작했을 때 세계 패션 위크에서마다 느껴지는 각 도시마다의 특별한 무드를 느끼게 되면서부터 영국, 런던 하면 떠오는 것은 'young' '펑키' '락' '아방가르드' 그리고 실험적인 신진 디자이너들의 꿈의 무대라는 것이었다. 이 단어들이 상징하는 대표적인 브랜드 "비비안 웨스트우드" 그녀가 40년 넘도록 영국의 이미지로 구축해 놓은 것들이다. 그녀는 파리나 밀라노의 어떤 브랜드들과는 다른 하이앤드의 문화나 이미지를 추구했던 것과는 다른 행보를 걷는다. 1960년대 70년대의 young peaple들의 저항의 문화를 하이문화로 끓어올렸다. 굳이 이미지 메이킹을 해서 고급스럽게 포장하려 한 것이 아닌 낡은 것 그 자체로 파워 있게 그러면서도 그 한 시대의 찰나의 무드로 끝내는 것이 아닌 전통문화를 그 속에 담아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지금까지도 그녀가 구축해 놓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심벌'obr & ring'과 함께 '해리스 트위드' '타탄체크''니트 트윈 세트' '개버딘' '아방가르드한 입체 패턴'이 모든 것들이 지금의 영국의 대표하는 가장 영국적인 테일러링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그 공으로 1991-92 연속 British Designer of the Year로 선정되었고  199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OBE)과 2006년에는 기사작위(DBE 작위)를 수여 받았다. 2003년에는 V&A박물관에서 그녀의 작품세계를 회고하는 전시회를 진행했다. 그녀의 아티스트로서의 파격적 행보는 패션에서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정치 색깔을 내는데 주저함이 없고 또 그 누구보다 더 한 파격으로 친환경을 위한 목소리를 끊임없이 냈다."들 사고, 덜 소비해야 한다. 물건을 살 때 생각 없이 구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Buy less, choose well, make it last. 이 문구야 말로 패션 산업뿐 아니라 현재 심각한 지구 위기 속에 있는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잘 표현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녀의 패션  브랜드 성장 스토리

잉글랜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비비안 이자벨 스퀘어의 첫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21살 때  데릭 웨스트우드와 결혼하면서 웨스트우드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고, 이혼 후 1965년 시대의 자유와 저항을 대변한 말콤 맥라렌과의 만남에서부터 인생이 바뀌게 되어 디자이너로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킹스로드에서 그와 함께 'Let it Rock’이라는 매장을 열고 그의 영향으로 구제품을 컷 앤 아웃하고 펑키하게 DIY해서 판매하면서 기성문화나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저항 정신의 포토그라피 티셔츠나 제임스 딘의 반항아 이미지를 추구하는 가죽 재킷 등으로 자신들의 정신을 표현, 젊은 층에 지지를 얻었다. 맥라렌과의 함께했던 시절에 그녀가 경험했던 주류를 벗어난 자신만의 세계의 탐닉은 펑키한 그녀의 삶에 중심적인 모토가 되었다. 맥라렌과 이별 후 '비비안 웨스트우드'라는 이름으로 한 단계 성장할 때 그녀는 18세기 역사 속의 전통적 패턴 방식들을 심도 있게 연구하면서 영국의 보수적인 전통을 현대와 접목해서 그녀 다운 위트 있는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 새로운 컬렉션 "헤리스 트위드"는 영국의 새로운 클래식이 되었다. 또 타문화와의 접목을 통한 에로틱한 아방가르드 스타일과 서양 복식사의 기초적 스타일링 개념을 벗어난 해체와 재조합이나 뷔스티에등을 통한 속옷의 겉옷화, 그리고 전통적 소재와 에로틱한 소재등과의 믹스 매치등으로 예전의 펑키한 웨스트우드의 스타일과는 또 다른 파격으로 포스트 모더니즘 트렌드를 선도했다. 그때의 미니 크리니나 플랫폼 슈즈 등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되었고 1992년 이후 그의 제자이자 현재 그녀의 남편이며 오래된 협력자인 안드레아 크론탈러와 더불어 파격적이면서도 가장 영국적 브랜드로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견고히 만들어 가고 있다. 그녀만의 창조적 세계관은 존 갈리아노, 알렉사너 맥퀸, 장 폴 고티에, 스텔라 맥카트니등 다수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행동하는 사회 운동가

그녀가 디자이너의 디자이너로 영원한 아티스트로 자리 매김하기까지 브랜드의 성장 스토리의 출발점엔 사람과의 만남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그렇게 사람을 주목했고 그래서 그 사람이 속해 있는 사회, 환경, 그리고 이 지구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생긴 건 아닐까. 1994년 기후 변화에 대한 ‘가이아 이론’을 만든 환경학자인 제임스 러브록의 책을 읽고 수십억 명의 사람이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에 기후 변화로 생존을 위협받고, 북극엔 생물이 사라져갈 것이란 예측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 자신의  자리에서 꾸준히 환경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언뜻 생각해 보면 패션이 기후 변화에 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가장 잘하고 자신 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파급력이 높은 그 자리, 패션쇼의 피날레에서부터 목소리를 내고 함께 참여하길 독려했다. 그것이 영리한 아티스트가 세상을 한 발짝 더 나아지도록 만드는 방법이었다. 그녀는 꾸준히 '그린피스'나 '쿨어스'같은 환경운동 단체에 기부와 함께 캠페인을 벌이기고  멜리사, 러시 같은 친환경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패션 환경과 인권 문제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아 2018 패션 어워즈에서 스와로브스키의 '긍정적 변화상'을 수상했다.

2021년 40주년을 기념으로  테임즈 앤 허드슨 캣워크 책 시리즈의 4번째 주인공이되어 출간되었을 때 남편이자 비지니스 파트너인 안드레아 트론탈러와 함께 한 하퍼스 바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오늘을 이해하려면 과거를 보면 되고 우리도 과거의 일부이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회운동가"라고 자신을 설명했듯, 영면에 들기 전까지 꾸준히 환경 운동과 더 나아가 삶을 위협받거나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정치적 메시지를 내야 하는 자리에서도 함께했다. 그 투쟁의 모습마저도 그녀를 닮은 패션처럼 펑키하고 저돌적이고 혁명적 있었던 우리의 아티스트, 그녀의 다이나믹한 삶에 대해 지드래곤을 통해서가 아님 잘 모르는 MZ세대들이나 그녀와의 이별이 아쉬운 사람들을 위해 "비비안 웨스트우드: 펑크, 아이콘, 액티비스트"(감독 로나 터커)라는 그녀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한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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